사람들도 내가 상상했던 대로 획일적으로 변한 건 아니었어요. 나누는 대화도 프랑스나 스위스에서처럼 날씨라든가, 수확이라든가, 그날 그날의 사건이라든가, 전쟁에 대한 무서움 따위였습니다. 그들도 전쟁을 두려워하더군요. 한 가지 다른 건 독일 바깥에서는 전쟁을 원하는 건 독일인이라고 말하는데, 거기서는 전쟁을 하도록 핍박하는 쪽은 외국인이라고 하는 사실일 뿐이었지요. 사람들은 전쟁이란 참극이 있기 직전에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 열렬히 평화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에리히 레마르크, "리스본의 밤", p. 50

리스본의 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 홍경호 옮김
범우사, 2006


최악의 정치가

And Everything 2012. 1. 17. 21:12
그 인간은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자신하고 자기 친구들한테는 말이예요. 정치가 중에서는 최악의 부류죠. 이기적이고, 능력이 없는 걸 자각하기엔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겉으론 자신만만한 척하지만 속은 겁쟁이거든요. 상황이 걱정을 수 없을만큼 악화되면 그 인간은 마을을 악마한테 팔아넘길 거에요. 그렇게 해서 제 한 몸 구할 수 있다면. 소심한 지도자만큼 위험한 사람도 없어요.
스티븐 킹, "언더 더 돔"

언더 더 돔
스티븐 킹 지음 |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2010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긴 거지? 우리 호주 사람은 전쟁이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 안 그래?"
"우린 영국에 심리적으로 동조했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다른 지원도 했겠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거야?"
"모르겠어... 멍청한 짓인데, 멈출 수 없는 그런 거. 내 말은, 한 2억 명쯤 되는 국민이 자기 나라의 명예를 위해 이웃나라에 코발트 폭탄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글쎄, 당신과 내가 어떻게 해 볼 여지는 많지 않아. 한 가지 희망은, 그들의 우둔함을 교육으로 깨우치는 거라고나 할까. 신문을 이용했다면 가능했을 거야. 우린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렇게 한 나라는 없어. 우리 전부 멍청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신문에 실리는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여자와 지저분한 폭행 사건을 좋아하거든. 그런 취향을 막고 깨우칠 만큼 현명한 정부도 없었고."
네빌 슈트, "해변에서", p. 395

해변에서
네빌 슈트 지음 | 정탄 옮김
황금가지, 2011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어도 도대체가 나아지는 게 없어! (응??)
윤리적 우주선들은 간청과 논쟁과 협박을 통해 우리 우주선을 멈추려고 했다. 그러나 간청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논쟁은 우리를 설득하지 못했다. 협박은 은하계 사이의 빈 공간만큼이나 공허했다.
훗날 몇 번이나 이런 여행을 경험한 뒤에, 나는 이 힘 없는 모기 같은 '단체' 구성원이 어디에나 널려 있으며, 끈질기고 헛된 노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다수의 우주선은 후방 미러에서 번득이는 빛들을 상대론적 공간 특유의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점을 시인해야겠다. 우리가 예의 '빅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주 팽창의 적어도 절반은 우리와 같은 우주선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오염의 파도를 타고, 공간을 더 많은 공간으로 채움으로써 미래의 후손들에게 나쁜 환경을 떠맡기는 우주선들에 의해.
그런 광경을 머리에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토록 우주선이 많았다니. 자기들 생각만 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추구하며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이런 우주선들 탓에 전 우주는 매일, 매년, 매십억 년 단위로 변화하고 있다. 모든 천체가 지금보다는 가까웠던 옛날 옛적에는 다른 종류의 이동수단으로도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에 살던 존재들은 절제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절제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BHG 엔진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반면, 미래의 존재들도 아마 우리에 대해 똑같은 소리를 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별들과 은하계들이, 바로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창조한 엄청난 심연에 의해 서로를 거의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먼 미래에는 말이다.
오호 통재라, 가능한 한 빨리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극기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전 우주의 팽창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규묘의 사건에 우리가 티끌만큼 기여한들 그게 뭐 대수겠는가? 우리가 여기서 멈춘다고 해도 사태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여튼 간에, 우리의 우주선 엔진은 기쁜 듯이 웅웅거린다. 안전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근접한 속도로 달리며 광속의 벽에 도전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요즘은 후방 미러를 보는 일이 거의 없으며... 잠깐 멈춰 서서 마냥 붉어지기만 하는 빛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데이비드 브린, "붉어지기만 하는 빛", pp. 93-99




하드 SF 르네상스 2
그렉 이건 외 지음 | 김상훈, 이수현 옮김
행복한책읽기


험악한 장바닥을 떠돌며 눈치껏 살아온 덕분에 약장수는 지역의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요령을 한 가지 터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는 거였다. 그것은 무지를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식과 예민한 안목 그리고 높은 인격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으며,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연출과 적당히 예의 바른 미소,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짧고 인상적인 멘트 하나면, 물론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약장수는 한 카페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다른 카페에서 써먹는 식으로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 효과는 놀랄 만큼 좋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멘트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 형식주의는 모방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죠.
- 보르헤스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지리함에 대한 열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는 무엇에 대한 열광일까요?
- 요즘 소설은 점점 더 미니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식의 짧은 말 한 마디면 사람들은 대개 그의 통찰력에 놀라며 의심 없이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족으로 인정해 주었다. 혹 누군가가 그의 언급에 대해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그는 신중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물러서곤 했다.
- 글쎄요. 그냥 제 짧은 소견이 그렇다는 것 뿐이죠.
그리곤, 커피를 한 모금 찔끔 마시며 다음과 같은 말로 화제를 돌렸다.
- 그런데 이번 문학상은 심사위원들이 너무 보수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까요? 물론, 그 작가가 훌륭하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 정도면 언제나 충분했다. 그가 한마디 던져 놓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떠들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앉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지식인이라는 부류는 대개 음험한 속셈을 감추고 있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편으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하고도 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화는 언제나 수박 겉핥기 식일 수밖에 없었으며 약장수는 그 점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p. 342-343


고래
천명관 지음
문학동네, 2004
"관계를 오래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아?"
그건 지금 그녀가 고민하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경연이 그 말을 한 순간 그녀는 이 순간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처럼 느껴졌다.
"... 어떻게 해야 하는데?"
"상대방과 함께 있는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는 거야."
박애진, "선물", p. 418

누군가를 만났어
배명훈, 김보영, 박애진 지음
행복한책읽기, 2007




+ 흠. 이건 정말 하늘에 맹세코(?) 진심인데, 구글-텍큐닷컴을 생각하고 따온 건 아닙니다. 그런데 말은 되네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퇴근!!!!!!!!!!!!! 그리고 퇴근의 동의어인 하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름만 넣으면 뿅 튀어나오는 뇌구조
가 요즘 여러 곳에 심심찮게 올라왔지만 그냥 에이 이게 뭐야- 하면서 지나쳤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할 일이 산더미인데 딴 짓을 하게 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아, 그냥 단순한 현실도피기제인가? ㅋ) 메커니즘 덕분에 링크를 눌렀는데, 예상 외로 현재 상태와 너무나 싱크로율 쩌는 고오-ㄹ져쓰하고 익스ㅌ롸디너리하고 스펙태-큘러하고 어메이징한 그림이 나와서 너무 웃겨서 안 퍼올 수가 없었다. ㅋㅋㅋ



- 휴식이 세 군데나 돼요.
- 내 말이.

2차 소스 http://deulpul.egloos.com/2896465 를 바탕으로 한글판 작성.
1차 소스는 Salon.com - This Modern World by Tom Tomorrow

2차 소스의 쥔장은 이 만화가 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얼마든지 응용 가능하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등장 인물의 머리 색깔 때문에 흡사 미쿡이 아니라 아시아의 어느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기가 막히게 멀쩡한 우연일 뿐이랍니다. ㅎ_ㅎ
그럭저럭 의사소통은 가능했고 내 영어 실력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곧 그 자신감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대학 내부나 주변 사람들은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의 영어 실력은 들어주기 힘든 수준이지만 그것이 당신의 지적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화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문화 차이와 언어장벽 때문이죠'라고 해석해 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바깥세상은 인정사정없는 곳이었다. 뉴욕에서는 영어 구사가 충분히 안 되는 사람은 불법이민자나 난민 같은 취급을 받는다. 나는 슈퍼마켓 계산대의 나이 어린 여자애한테서까지 경멸의 눈초리를 느껴야 했다. 그 점원은 쇼핑 바구니를 들고 있는 내게, 물건을 꺼내(take them out) 계산대 위에 올려 놓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내 뒤에서 어리벙벙한 채 서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한 여성이 안됐다는 태도로 나 대신 바구니에서 물건을 꺼내 주었다. 나는 기가 죽은 채로 슈퍼마켓을 뒤로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단, 이는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한참 뒤의 일이다.
큰 규모의 국제학회가 개최되었는데 수많은 분과회의가 열렸고 전 세계에서 많은 과학자가 모여들었다. 물론 비영어권에서 온 참가자도 많았다. 첫날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학회 개최를 알리는 선언을 하는데, 그때는 그 분야의 일인자가 기조강연을 하는 것이 관례다. 그 역할을 담당한 이는 스위스의 중진학자였다. 그는 위엄 넘치는 육중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단상에 올라 연단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여러분, 과학에 관한 세계 공용어는 당연히 영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는 독일계 스위스인인데, 그의 영어는 독일어 악센트가 상당히 심해서 인사치레로라도 '영어가 유창하시네요'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두 그의 다음 말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 독일이 과거에 모든 과학 분야를 선도한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 와서 설마.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의 세계 공용어는 바로... 서툰 영어입니다. 이번 회의 기간 중에는 부디 여러분 모두가 자발적으로 회의에 참가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의장에서는 커다란 웃음과 함께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 기조강연에 용기를 얻어서일까, 당시 학회의 각 분과에서는 아시아에서 온 비영어권 학자들의 활발한 발언이 돋보였다.
pp. 16-18

모자란 남자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9